◆ 책 소개
1등 브랜드 만드는 법!
이 책은 후발주자로 레드오션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전쟁 끝에 급기야 업계 1위를 하고 1등 브랜드가 되기까지의 마케팅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 철저히 현장에서 적용하고 증명해낸 것들이다. 이 책의 저자 김우화 대표는 필름의 ‘필’자도 모른 채 덜컥 필름업계에 뛰어들어 ‘똘아이’ ‘이단아’ ‘돈키호테’ ‘엉뚱한 놈’ ‘정신 나간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골리앗과 맞서 싸워 이긴 다윗처럼 차별화된 전략들을 세워 4년 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너무 쉽고 운 좋게 성공한 싱거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 아래처럼 그 앞에 그리고 인간 승리의 진한 감동은 그 뒤에 있다.
그 앞은 이렇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19년 동안 근무하면서 영업 현장과 마케팅 업무 등을 두루 담당해왔다. 그가 일했던 초창기 삼성전자는 가전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영업 마케팅을 벌였다. 사실 그와 그의 선후배들은 오늘날 세계적인 삼성전자의 DNA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가전제품은 기본이고 자판기, 시계, 금전등록기, 카메라, 방송용 장비 등 거의 모든 제품을 다 팔았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갔고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정면 돌파해냈고 위기를 되려 큰 기회로 만들어냈다.
우선, 1원 입찰 이야기. 대통령과 육해공군 장군들이 모여 회의하는 장소에 들어갈 가전제품 입찰. 규모가 1억 원이나 됐고 무엇보다도 선정되면 그 이상의 홍보 효과가 있는 중요한 입찰이었다. 그때 그는 과감하게 1원 입찰을 써낸다. 당시 담당자가 잘못 쓴 거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당연히 입찰에 성공. 하지만 회사로 돌아온 뒤 상사로부터 엄청난 욕설을 듣고 만다. 반전은 그다음에 있다. 며칠 후 신문에 1원 입찰 이야기가 기사화되면서 1억 원 이상의 홍보 효과를 얻은 것. 그 일로 그는 특진까지 한다. 아무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1원 입찰 에피소드이다.
한번은 음향기기 판매를 할 때다. 당시 음향장치라는 것이 굉장히 생소할 때였다. 당연히 고객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을 창출해보기로 했다. 교회와 성당의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에게 찾아다니며 음향장치의 필요성을 설득해 어마어마한 판매 성과를 이루어냈던 것. 그는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을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성경』을 수십 번 통독했고 그 안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까지 셌다. 또한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의 설교를 녹음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생리대 자판기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당시 생소했던 생리대를 알리기 위해 백화점 앞에 가서 여자들에게 나눠주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돼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여자들이 많은 한일합섬 앞에 가서 생리대 나눠주는 일을 계속했다. 젊은 남자가 생리대를 나눠주니 젊은 여자들이 부끄러워하며 그냥 지나치면 쫓아가서까지 주곤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들을 타파하고 혁신을 하는 데도 앞장섰다. 삼성전자 특판팀에 근무할 때 600곳이 넘는 외상거래처에 현금거래 혁명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모두 다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던 일인데 과감하게 시작했고 마침내 그 방식을 정착시켰다. 그는 그렇게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그까짓 것’이라는 마음으로 맷집을 가지고 부딪쳐 장애물들을 극복해왔다.
필름업계에 뛰어든 뒤에도 혁신을 계속됐다. 그는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9,900원이라는 끝이 딱 떨어지지 않는 금액으로 판매하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보통은 1만 원, 5만 원…… 이렇게 딱 떨어지게 했다. 하지만 그는 끝을 9,900원으로 책정해 고객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을 시켰고 또 싸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지금이야 홈쇼핑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그렇게 가격을 책정하지만 그 당시에 그런 가격을 책정한 사람은 그뿐이었다. 그가 최초였다. 또한 그는 제품에 ‘슈퍼’라는 단어를 붙여 경쟁업체 제품과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었고 높은 판매를 일으켰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바닥에 떨어져 지옥을 경험하고 만다. 그 상황에서 부도를 내고 남은 재산을 지키느냐, 남은 재산을 다 팔고 사업을 지키느냐의 기로에 섰다. 그는 부도를 내는 대신 남은 재산을 정리해 사업을 일으키기로 한다. 그리고는 “필름이라고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루이비통이 명품 가방을 대표한다면 우리가 썬팅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돼보자.”라는 포부를 품고 썬팅 전문점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썬팅 전문점은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480개가 운영 중이다. 또한 업계 최초 보증제도, 업계 최초 전면 썬팅, 업계 최초 썬팅경영대회 개최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했다.
개척하지 못할 운명이란 없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해 맨주먹 자수성가 그 자체이다. 그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악’과 ‘깡’으로 맞서 싸우며 개척해왔다. 그 어린 시절에도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선,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차 요원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대구 동화사 근처에서 도로공사를 했다.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근방에서 자주 놀곤 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켜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곧 돈을 주고 맡겼다. 그는 그렇게 오토바이를 지켜주고 돈을 받아 용돈도 하고 군것질도 했다. 어떻게 보면 봉이 김선달 같지만 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사업 수완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열다섯 살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서소문 법원 앞에서 구두닦이로 일했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남과 다르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인정을 받아 구두 터를 세 곳으로 늘렸고 그 밑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열두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운명이 단지 좀 성공한 구두닦이에 머무르도록 두지 않았다. 그는 낮에는 죽어라 구두를 닦으며 돈을 벌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해 대학까지 갔다. 대학에 가서도 구두닦이, 채소 장사, 수박 장사, 아파트 수위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잔디 까는 일을 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못 쓰게 되기도 했고 목숨을 걸고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기도 했다.
비록 그 당시 그의 주머니에 돈은 없었지만 그의 패기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었고 도전적이었다. 그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그는 대학시절 돈이 없어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업하고 돈을 벌면 꼭 여자랑 데이트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상향을 그렸다. 그다음에는 그 이상향을 실제로 만나기 위해 실행해 들어갔다. 바로 이화여대 근처에서 하숙했던 것. 그리고 진짜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가 된 약대생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면서 상상의 힘을 믿었던 신비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2년 경상북도 문경에 사회복지법인 ‘미오림복지재단’을 설립해 지적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돕고 있다.
◆ 저자 소개
김우화
1972년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수료했다.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영업현장과 마케팅 업무 등을 두루 담당하며 1992년까지 근무했다. 입사 초기 삼성전자는 가전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영업 마케팅 전쟁을 치렀다. 사실상 그 당시 함께 일했던 그와 그의 선후배들은 오늘날 세계적인 삼성전자의 DNA를 만들어낸 주역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면서 “아무리 장사를 잘하더라도 마케팅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1992년 (주)아코상사를 설립해 미국 씨피에프사 필름의 한국 에이전트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코상사는 ‘한국의 예술이 되자’는 의미로 아트코리아의 약자이다. 그 당시는 자동차에 필름을 바른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썬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기다. 그 역시 필름의 ‘필’자도 모른 채 덜컥 뛰어들어 4년 만에 업계 1위를 했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 때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지옥을 겪으면서도 “필름이라고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루이비통이 명품 가방을 대표한다면 우리가 썬팅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돼보자.”라는 포부를 품고 썬팅전문점 유치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썬팅전문점은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480개가 운영 중이다. 또한 업계 최초 보증제도, 업계 최초 전면썬팅, 업계 최초 썬팅경연대회 개최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해 맨주먹 자수성가 그 자체이다. 그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악’과 ‘깡’으로 맞서 싸우며 개척해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열다섯 살부터 학교를 때려치우고 서소문 법원 앞에서 구두닦이로 일했다. 낮에는 죽어라 구두를 닦으며 돈을 벌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해 대학까지 갔다. 대학에 가서도 구두닦이, 채소 장사, 수박 장사, 아파트 수위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잔디 까는 일을 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못 쓰게 되기도 했고 목숨을 걸고 줄 하나에 의지하며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지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개척하면서 지금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또한 2002년 경상북도 문경시에 사회복지법인 ‘미오림복지재단’을 설립해 지적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돕고 있다.
2007년 전경련 국제경영원 최우수 경영인상과 2008년 국제로터리 폴 해리스 봉사상을 받았다. 또한 2010년 신지식인상을 받았고 2012년과 2015년에는 우수납세자로 선정되어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상과 부총리상을 받았다.
현재 루마코리아 대표이자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 목차
추천사_살아 있는 사업 성공 방정식_김현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추천사_위기에 맞서 정면 돌파하는 법_한근태(한스컨설팅 대표)
프롤로그 1등 브랜드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1장 개척자가 되어라 Be a Pioneer
1 세상은 돈키호테들에 의해 발전한다
한 번쯤은 똘아이란 말을 들어도 좋다
모든 시작은 무모하다 │ 저 하늘의 별을 잡자
2 남 탓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
절실함으로 불친절한 인생을 굴복시켜라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 인생에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3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세상에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해하지 마라
실력은 지능지수가 아닌 자신감지수에서 나온다
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4 세상은 노력하는 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10퍼센트 부족하면 10퍼센트 더 노력하면 된다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5 이왕이면 최고를 목표로 가져라
처음부터 1등을 목표로 하라 │ 끊임없이 절제하라
6 인생은 깡이다
때론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인생은 없다
신념이 있다면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굽히지 않는다
제2장 게임의 규칙을 바꿔라 Be a Game Changer
1 차별화하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고민한 만큼 답이 나온다 │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
2 기존 관행을 벗어나 혁신을 시도하라
오늘을 어제의 방식으로 살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 │ 모든 도전자들은 이단아이다
3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려라
단기적으로 보지 마라 │ 내일을 위한 사과나무를 심어라
4 트렌드를 읽으면 판을 바꿀 수 있다
항상 세상의 흐름에 주목하라 │ 끊임없이 공부하라
5 영업하지 말고 마케팅하라
브랜드로 승부하라 │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팔아라
덩치 싸움은 의미가 없다
제3장 떨어졌다면 튀어올라라 Bounce Back from It
1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정신만 차리면 잘할 수 있다
2 위기 앞에서는 정면 돌파가 답이다
무책임하게 도망가는 겁쟁이가 되지 마라
살고자 하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린다
3 상상이라는 마법을 빌려라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은 상상력이다 │ 꿈의 크기가 성공의 크기이다
아이디어는 1퍼센트이고 실행이 99퍼센트이다
4 지독한 끈기가 성공을 부른다
끝까지 매달리는 자가 이긴다 │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길은 있다
5 작품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련이 클수록 꽃도 활짝 피는 법이다
역경과 고난보다 이롭고 유익한 훈련은 없다
제4장 마음을 얻어라 Get People’s Mind
1 마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마음을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리허설을 해봐라
2 성공의 단초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아주 작은 불편도 용납하지 마라
상대방이 기대했던 것 이상을 해줘라
제품이 아니라 정성을 팔아라
3 하늘은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
상대를 잘되게 해주면 나도 잘될 수 있다
성공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4 소통하는 사람이 마음을 얻는다
리더의 작은 배려가 회사를 즐겁게 한다
일단 맡겼으면 끝까지 믿어줘라
5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 마라
최후의 승자는 정정당당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결코 잘될 수가 없다
6 한 명을 잃으면 100명을 잃는 것이다
7 작품을 먼저 만들어놓고 고객을 기다려라
제5장 역발상으로 승부하라 Think in Reverse
1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지 마라
남들과 똑같으면 남 이상이 될 수 없다
엉뚱하고 독특한 시도들을 계속하라
2 끊임없이 세상에 물음표를 던져라
모든 비즈니스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묻지 않으면 답을 얻지 못한다
3 고정관념이라는 상자에서 벗어나라
고정관념을 깨면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레드오션에서도 블루오션을 찾을 수 있다
4 항상 긍정의 스위치를 켜라
위기에서 위험할 ‘위’자를 떼어내라
부정의 안경을 벗고 긍정의 안경을 써라
5 뒤집어 생각하면 돌파구가 보인다
인재 채용에도 역발상이 필요하다
진주는 진흙 속에 숨어 있다
에필로그 좋은 일을 하면 사업도 잘된다
◆ 추천의 글
나는 책을 읽으면서 행간 곳곳에서 김우화 회장의 인품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더 재미난 것은 좌충우돌하며 전개되는 사업 이야기였다. 그 속에는 기존의 경영학 이론과는 배치되는 이야기도 많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왜 학자들이 벤처기업을 하면 망하는지, 왜 경영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사업하면 실패하는지를 뼈저리게 통감하였다. 사업의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김우화 회장의 생생한 증언 속에서 살아 있는 사업 성공의 방정식을 찾아보길 바란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나는 이 책을 통해 현실 직시와 정면 돌파를 배웠다. 우리는 흔히 현실을 외면한다. 현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다. 정면돌파 대신 방구석에 틀어박힌다. 그리고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신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주길 바란다. 그는 다르다. 그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그는 크게 성공했다가 또 크게 망했다가 다시 기사회생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었다. 우리도 그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오늘날 세계 속의 신화를 이룩한 삼성전자. 그 창사 초기에 후발 가전업체인 삼성전자의 영업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김 과장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는 늘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곤 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당시 영업 현장을 같이 했던 김우화 회장과의 추억들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루마의 성공은 그의 창조, 융합적인 생각, 순발력, 튀는 사고, 유능한 인적 네트워크가 이루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는 남을 배려하는 데도 남달랐다. 그러한 마음이 지금의 미오림복지재단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실전 마케팅 전략서’로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최충경, 경영학 박사/ 경남스틸 CEO/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예술가들은 장인이 되기 위해 영혼까지 바치려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김우화 회장은 예술가가 아닌 기업가이면서 장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사명을 ‘한국의 예술이 되자’는 포부로 아트코리아의 약자인 아코상사라고 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김우화 회장의 비즈니스 인생의 그 모든 과정들을 옆에서 직접 보면서 항상 배울 점들을 발견하곤 했다. 이 세상에 하찮은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극복하지 못할 운명도 없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것들이다.
-이루마, 피아니스트
김우화 회장은 일단 저지르고 그다음에 생각한다. 그렇게 번개처럼 빠르게 결단하고 일을 저질렀으면서도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것처럼 고품질을 유지하고 고도의 마케팅까지 구사해 깜짝 놀라게 한다. 그는 한마디로 돈키호테 같다. 필름의 ‘필’자로 모른 채 필름업계에 뛰어들어 4년 만에 당당히 업계 1위로 우뚝 섰으니 말이다. 그가 한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혹은 누군가를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며 찾아낸 해답들이다. 이 책 안에 그 모든 노하우가 다 담겨 있다. 지금도 그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늙지 않을 것이다.
-이영석, 총각네 야채가게 대표
◆ 본문 중에서
❙그런가 하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자신감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그런데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에서 자신감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갑옷과도 같다. 갑옷이 없는 사람은 결국 회사생활에 항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삼성전자에서 19년 동안 근무하면서 영업관리, 채권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모두 해왔다. 나처럼 다양한 부서를 모두 경험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가전제품은 기본이고 자판기, 시계, 금전등록기, 카메라, 방송용 장비 등 거의 모든 제품을 다 팔았다.
그래서 많은 분이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묻는다. 그건 바로 자신감이라는 갑옷을 항상 걸쳤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때마다 내가 해내지 못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난 할 수 있다. 아이 캔 두I can do. ’
이 말을 항상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항상 현실로 이어졌다. 또 필름 사업을 시작할 때도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IMF 외환위기 때 나를 지탱시켰던 무기 역시 자신감이었다.
-47쪽
❙ 하지만 상대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몰입을 하면 답을 찾는다고. 어느 날 ‘1원’에 입찰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간혹 1원 입찰 사례가 있지만, 그때는 1원 입찰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그런 시대에 1원을 적어낸다는 것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선례가 없다고 해서 주저하기보다는 뭐든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 내가 사고를 한번 쳐보자. 이번 입찰은 사고를 치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겁도 없이 상사와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입찰장에 들어가서 1원을 적어냈다. 그러자 담당자가 깜짝 놀라서 나를 불러세웠다.
“이거 잘못 쓴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맞게 적었습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우리 회사가 입찰에 성공했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회사에 들어왔는데 1원 입찰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발칵 뒤집힌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상사가 결재판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었다.
“너 미친 거 아냐? 어떻게 1원을 적을 수 있어? 너 회사 팔아먹을래?”
-54쪽
❙ 그러다 그 말이 결국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삼성전자에서 19년 동안 일하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아무리 장사를 잘하더라도 마케팅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내가 업계 1등으로 올라서겠다.’
필름 사업을 하는 동안 그 목표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나에게 ‘1’이란 엄청난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매직넘버였다. 나는 모든 에너지를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쏟아부었다. 1등이라는 목표는 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결국 4년 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1등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면 목표 달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60쪽
❙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생각해낸 가격이 바로 ‘149,900’원이었다. 지금이야 홈쇼핑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가격을 책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필름업계에서는 9,900원으로 가격을 정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1만 원, 5만 원…… 이렇게 딱 떨어지게 하는 게 보통이었다. 9,900원 식으로 가격을 생각해낸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격을 책정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확실히 남을 수 있고 또 동시에 싸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카피를 멋지게 하나 만들어서 잡지에 광고를 냈다.
“스모그 필름 149,900원에 엄청나게 싸게 팝니다.”
광고가 나간 후 사무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필름가격이 공개되자 총판들은 물론이고 거래처들도 모두 놀라는 것이다.
-79쪽
❙ ‘취업해서 돈을 벌면 나도 남들처럼 여자랑 데이트하자.’
이화여대 근처에 하숙집을 정했다. 서울 그 넓은 지역에서 하필이면 이화여대 근처에 갔을까? 아무래도 여대 앞이니 예쁜 여자를 만날 확률이 높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하숙집을 정했다. 그리고 어떤 여성을 만나면 좋을지 계속 상상했다.
‘내가 인상이 좀 나쁘니 여자친구는 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눈이 크고 피부가 하야면 순해 보이니 나랑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아내가 된 약대생을 만나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자는 게 목표였는데 뜻한 바를 이룬 것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능력 있는 아내를 만난 것도 내가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132쪽
❙ 그럼 상대의 마음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뮤지컬이나 연극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꼭 하는 게 있다. 바로 리허설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미흡한 부분이나 보오나할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리허설이 있기에 실전에서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상대를 만날 때도 이런 리허설이 필요하다. 리허설을 해보고 나가면 상대의 마음을 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책상 위에서 연습하고 나가세요.”
내가 삼성전자 시절부터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한 말이다. 이제 무슨 의미일까? 즉 상대를 만나기 전에 마음을 열 방법을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한 번은 부산에서 대리점 소장을 할 때였다. 당시 회사 차원에서 전국에 있는 출장소들을 불러서 대리점 개설 경쟁을 시켰다. 그런데 운 좋게도 내가 전국에서 1등을 한 것이다. 다른 소장들은 네다섯 번 찾아가서 이야기해도 설득이 안 됐다. 그런데 내가 가면 한 번에 ‘오케이’ 하는 것이다. 덕분에 포상금으로 5,0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그 비결이 뭐였을까? 말발이 화려해서? 아니다. 비결은 바로 책상 위에서 미리 연습하고 나가는 것이다.
-158~159쪽
◆ 책 소개
1등 브랜드 만드는 법!
이 책은 후발주자로 레드오션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전쟁 끝에 급기야 업계 1위를 하고 1등 브랜드가 되기까지의 마케팅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 철저히 현장에서 적용하고 증명해낸 것들이다. 이 책의 저자 김우화 대표는 필름의 ‘필’자도 모른 채 덜컥 필름업계에 뛰어들어 ‘똘아이’ ‘이단아’ ‘돈키호테’ ‘엉뚱한 놈’ ‘정신 나간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골리앗과 맞서 싸워 이긴 다윗처럼 차별화된 전략들을 세워 4년 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너무 쉽고 운 좋게 성공한 싱거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 아래처럼 그 앞에 그리고 인간 승리의 진한 감동은 그 뒤에 있다.
그 앞은 이렇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19년 동안 근무하면서 영업 현장과 마케팅 업무 등을 두루 담당해왔다. 그가 일했던 초창기 삼성전자는 가전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영업 마케팅을 벌였다. 사실 그와 그의 선후배들은 오늘날 세계적인 삼성전자의 DNA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가전제품은 기본이고 자판기, 시계, 금전등록기, 카메라, 방송용 장비 등 거의 모든 제품을 다 팔았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갔고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정면 돌파해냈고 위기를 되려 큰 기회로 만들어냈다.
우선, 1원 입찰 이야기. 대통령과 육해공군 장군들이 모여 회의하는 장소에 들어갈 가전제품 입찰. 규모가 1억 원이나 됐고 무엇보다도 선정되면 그 이상의 홍보 효과가 있는 중요한 입찰이었다. 그때 그는 과감하게 1원 입찰을 써낸다. 당시 담당자가 잘못 쓴 거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당연히 입찰에 성공. 하지만 회사로 돌아온 뒤 상사로부터 엄청난 욕설을 듣고 만다. 반전은 그다음에 있다. 며칠 후 신문에 1원 입찰 이야기가 기사화되면서 1억 원 이상의 홍보 효과를 얻은 것. 그 일로 그는 특진까지 한다. 아무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1원 입찰 에피소드이다.
한번은 음향기기 판매를 할 때다. 당시 음향장치라는 것이 굉장히 생소할 때였다. 당연히 고객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을 창출해보기로 했다. 교회와 성당의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에게 찾아다니며 음향장치의 필요성을 설득해 어마어마한 판매 성과를 이루어냈던 것. 그는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을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성경』을 수십 번 통독했고 그 안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까지 셌다. 또한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의 설교를 녹음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생리대 자판기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당시 생소했던 생리대를 알리기 위해 백화점 앞에 가서 여자들에게 나눠주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돼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여자들이 많은 한일합섬 앞에 가서 생리대 나눠주는 일을 계속했다. 젊은 남자가 생리대를 나눠주니 젊은 여자들이 부끄러워하며 그냥 지나치면 쫓아가서까지 주곤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들을 타파하고 혁신을 하는 데도 앞장섰다. 삼성전자 특판팀에 근무할 때 600곳이 넘는 외상거래처에 현금거래 혁명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모두 다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던 일인데 과감하게 시작했고 마침내 그 방식을 정착시켰다. 그는 그렇게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그까짓 것’이라는 마음으로 맷집을 가지고 부딪쳐 장애물들을 극복해왔다.
필름업계에 뛰어든 뒤에도 혁신을 계속됐다. 그는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9,900원이라는 끝이 딱 떨어지지 않는 금액으로 판매하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보통은 1만 원, 5만 원…… 이렇게 딱 떨어지게 했다. 하지만 그는 끝을 9,900원으로 책정해 고객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을 시켰고 또 싸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지금이야 홈쇼핑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그렇게 가격을 책정하지만 그 당시에 그런 가격을 책정한 사람은 그뿐이었다. 그가 최초였다. 또한 그는 제품에 ‘슈퍼’라는 단어를 붙여 경쟁업체 제품과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었고 높은 판매를 일으켰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바닥에 떨어져 지옥을 경험하고 만다. 그 상황에서 부도를 내고 남은 재산을 지키느냐, 남은 재산을 다 팔고 사업을 지키느냐의 기로에 섰다. 그는 부도를 내는 대신 남은 재산을 정리해 사업을 일으키기로 한다. 그리고는 “필름이라고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루이비통이 명품 가방을 대표한다면 우리가 썬팅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돼보자.”라는 포부를 품고 썬팅 전문점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썬팅 전문점은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480개가 운영 중이다. 또한 업계 최초 보증제도, 업계 최초 전면 썬팅, 업계 최초 썬팅경영대회 개최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했다.
개척하지 못할 운명이란 없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해 맨주먹 자수성가 그 자체이다. 그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악’과 ‘깡’으로 맞서 싸우며 개척해왔다. 그 어린 시절에도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선,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차 요원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대구 동화사 근처에서 도로공사를 했다.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근방에서 자주 놀곤 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켜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곧 돈을 주고 맡겼다. 그는 그렇게 오토바이를 지켜주고 돈을 받아 용돈도 하고 군것질도 했다. 어떻게 보면 봉이 김선달 같지만 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사업 수완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열다섯 살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서소문 법원 앞에서 구두닦이로 일했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남과 다르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인정을 받아 구두 터를 세 곳으로 늘렸고 그 밑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열두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운명이 단지 좀 성공한 구두닦이에 머무르도록 두지 않았다. 그는 낮에는 죽어라 구두를 닦으며 돈을 벌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해 대학까지 갔다. 대학에 가서도 구두닦이, 채소 장사, 수박 장사, 아파트 수위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잔디 까는 일을 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못 쓰게 되기도 했고 목숨을 걸고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기도 했다.
비록 그 당시 그의 주머니에 돈은 없었지만 그의 패기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었고 도전적이었다. 그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그는 대학시절 돈이 없어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업하고 돈을 벌면 꼭 여자랑 데이트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상향을 그렸다. 그다음에는 그 이상향을 실제로 만나기 위해 실행해 들어갔다. 바로 이화여대 근처에서 하숙했던 것. 그리고 진짜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가 된 약대생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면서 상상의 힘을 믿었던 신비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2년 경상북도 문경에 사회복지법인 ‘미오림복지재단’을 설립해 지적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돕고 있다.
◆ 저자 소개
김우화
1972년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수료했다.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영업현장과 마케팅 업무 등을 두루 담당하며 1992년까지 근무했다. 입사 초기 삼성전자는 가전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영업 마케팅 전쟁을 치렀다. 사실상 그 당시 함께 일했던 그와 그의 선후배들은 오늘날 세계적인 삼성전자의 DNA를 만들어낸 주역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면서 “아무리 장사를 잘하더라도 마케팅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1992년 (주)아코상사를 설립해 미국 씨피에프사 필름의 한국 에이전트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코상사는 ‘한국의 예술이 되자’는 의미로 아트코리아의 약자이다. 그 당시는 자동차에 필름을 바른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썬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기다. 그 역시 필름의 ‘필’자도 모른 채 덜컥 뛰어들어 4년 만에 업계 1위를 했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 때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지옥을 겪으면서도 “필름이라고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루이비통이 명품 가방을 대표한다면 우리가 썬팅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돼보자.”라는 포부를 품고 썬팅전문점 유치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썬팅전문점은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480개가 운영 중이다. 또한 업계 최초 보증제도, 업계 최초 전면썬팅, 업계 최초 썬팅경연대회 개최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해 맨주먹 자수성가 그 자체이다. 그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악’과 ‘깡’으로 맞서 싸우며 개척해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열다섯 살부터 학교를 때려치우고 서소문 법원 앞에서 구두닦이로 일했다. 낮에는 죽어라 구두를 닦으며 돈을 벌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해 대학까지 갔다. 대학에 가서도 구두닦이, 채소 장사, 수박 장사, 아파트 수위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잔디 까는 일을 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못 쓰게 되기도 했고 목숨을 걸고 줄 하나에 의지하며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지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개척하면서 지금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또한 2002년 경상북도 문경시에 사회복지법인 ‘미오림복지재단’을 설립해 지적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돕고 있다.
2007년 전경련 국제경영원 최우수 경영인상과 2008년 국제로터리 폴 해리스 봉사상을 받았다. 또한 2010년 신지식인상을 받았고 2012년과 2015년에는 우수납세자로 선정되어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상과 부총리상을 받았다.
현재 루마코리아 대표이자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 목차
추천사_살아 있는 사업 성공 방정식_김현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추천사_위기에 맞서 정면 돌파하는 법_한근태(한스컨설팅 대표)
프롤로그 1등 브랜드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1장 개척자가 되어라 Be a Pioneer
1 세상은 돈키호테들에 의해 발전한다
한 번쯤은 똘아이란 말을 들어도 좋다
모든 시작은 무모하다 │ 저 하늘의 별을 잡자
2 남 탓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
절실함으로 불친절한 인생을 굴복시켜라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 인생에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3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세상에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해하지 마라
실력은 지능지수가 아닌 자신감지수에서 나온다
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4 세상은 노력하는 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10퍼센트 부족하면 10퍼센트 더 노력하면 된다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5 이왕이면 최고를 목표로 가져라
처음부터 1등을 목표로 하라 │ 끊임없이 절제하라
6 인생은 깡이다
때론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인생은 없다
신념이 있다면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굽히지 않는다
제2장 게임의 규칙을 바꿔라 Be a Game Changer
1 차별화하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고민한 만큼 답이 나온다 │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
2 기존 관행을 벗어나 혁신을 시도하라
오늘을 어제의 방식으로 살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 │ 모든 도전자들은 이단아이다
3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려라
단기적으로 보지 마라 │ 내일을 위한 사과나무를 심어라
4 트렌드를 읽으면 판을 바꿀 수 있다
항상 세상의 흐름에 주목하라 │ 끊임없이 공부하라
5 영업하지 말고 마케팅하라
브랜드로 승부하라 │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팔아라
덩치 싸움은 의미가 없다
제3장 떨어졌다면 튀어올라라 Bounce Back from It
1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정신만 차리면 잘할 수 있다
2 위기 앞에서는 정면 돌파가 답이다
무책임하게 도망가는 겁쟁이가 되지 마라
살고자 하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린다
3 상상이라는 마법을 빌려라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은 상상력이다 │ 꿈의 크기가 성공의 크기이다
아이디어는 1퍼센트이고 실행이 99퍼센트이다
4 지독한 끈기가 성공을 부른다
끝까지 매달리는 자가 이긴다 │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길은 있다
5 작품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련이 클수록 꽃도 활짝 피는 법이다
역경과 고난보다 이롭고 유익한 훈련은 없다
제4장 마음을 얻어라 Get People’s Mind
1 마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마음을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리허설을 해봐라
2 성공의 단초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아주 작은 불편도 용납하지 마라
상대방이 기대했던 것 이상을 해줘라
제품이 아니라 정성을 팔아라
3 하늘은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
상대를 잘되게 해주면 나도 잘될 수 있다
성공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4 소통하는 사람이 마음을 얻는다
리더의 작은 배려가 회사를 즐겁게 한다
일단 맡겼으면 끝까지 믿어줘라
5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 마라
최후의 승자는 정정당당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결코 잘될 수가 없다
6 한 명을 잃으면 100명을 잃는 것이다
7 작품을 먼저 만들어놓고 고객을 기다려라
제5장 역발상으로 승부하라 Think in Reverse
1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지 마라
남들과 똑같으면 남 이상이 될 수 없다
엉뚱하고 독특한 시도들을 계속하라
2 끊임없이 세상에 물음표를 던져라
모든 비즈니스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묻지 않으면 답을 얻지 못한다
3 고정관념이라는 상자에서 벗어나라
고정관념을 깨면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레드오션에서도 블루오션을 찾을 수 있다
4 항상 긍정의 스위치를 켜라
위기에서 위험할 ‘위’자를 떼어내라
부정의 안경을 벗고 긍정의 안경을 써라
5 뒤집어 생각하면 돌파구가 보인다
인재 채용에도 역발상이 필요하다
진주는 진흙 속에 숨어 있다
에필로그 좋은 일을 하면 사업도 잘된다
◆ 추천의 글
나는 책을 읽으면서 행간 곳곳에서 김우화 회장의 인품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더 재미난 것은 좌충우돌하며 전개되는 사업 이야기였다. 그 속에는 기존의 경영학 이론과는 배치되는 이야기도 많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왜 학자들이 벤처기업을 하면 망하는지, 왜 경영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사업하면 실패하는지를 뼈저리게 통감하였다. 사업의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김우화 회장의 생생한 증언 속에서 살아 있는 사업 성공의 방정식을 찾아보길 바란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나는 이 책을 통해 현실 직시와 정면 돌파를 배웠다. 우리는 흔히 현실을 외면한다. 현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다. 정면돌파 대신 방구석에 틀어박힌다. 그리고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신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주길 바란다. 그는 다르다. 그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그는 크게 성공했다가 또 크게 망했다가 다시 기사회생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었다. 우리도 그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오늘날 세계 속의 신화를 이룩한 삼성전자. 그 창사 초기에 후발 가전업체인 삼성전자의 영업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김 과장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는 늘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곤 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당시 영업 현장을 같이 했던 김우화 회장과의 추억들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루마의 성공은 그의 창조, 융합적인 생각, 순발력, 튀는 사고, 유능한 인적 네트워크가 이루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는 남을 배려하는 데도 남달랐다. 그러한 마음이 지금의 미오림복지재단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실전 마케팅 전략서’로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최충경, 경영학 박사/ 경남스틸 CEO/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예술가들은 장인이 되기 위해 영혼까지 바치려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김우화 회장은 예술가가 아닌 기업가이면서 장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사명을 ‘한국의 예술이 되자’는 포부로 아트코리아의 약자인 아코상사라고 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김우화 회장의 비즈니스 인생의 그 모든 과정들을 옆에서 직접 보면서 항상 배울 점들을 발견하곤 했다. 이 세상에 하찮은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극복하지 못할 운명도 없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것들이다.
-이루마, 피아니스트
김우화 회장은 일단 저지르고 그다음에 생각한다. 그렇게 번개처럼 빠르게 결단하고 일을 저질렀으면서도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것처럼 고품질을 유지하고 고도의 마케팅까지 구사해 깜짝 놀라게 한다. 그는 한마디로 돈키호테 같다. 필름의 ‘필’자로 모른 채 필름업계에 뛰어들어 4년 만에 당당히 업계 1위로 우뚝 섰으니 말이다. 그가 한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혹은 누군가를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며 찾아낸 해답들이다. 이 책 안에 그 모든 노하우가 다 담겨 있다. 지금도 그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늙지 않을 것이다.
-이영석, 총각네 야채가게 대표
◆ 본문 중에서
❙그런가 하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자신감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그런데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에서 자신감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갑옷과도 같다. 갑옷이 없는 사람은 결국 회사생활에 항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삼성전자에서 19년 동안 근무하면서 영업관리, 채권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모두 해왔다. 나처럼 다양한 부서를 모두 경험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가전제품은 기본이고 자판기, 시계, 금전등록기, 카메라, 방송용 장비 등 거의 모든 제품을 다 팔았다.
그래서 많은 분이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묻는다. 그건 바로 자신감이라는 갑옷을 항상 걸쳤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때마다 내가 해내지 못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난 할 수 있다. 아이 캔 두I can do. ’
이 말을 항상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항상 현실로 이어졌다. 또 필름 사업을 시작할 때도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IMF 외환위기 때 나를 지탱시켰던 무기 역시 자신감이었다.
-47쪽
❙ 하지만 상대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몰입을 하면 답을 찾는다고. 어느 날 ‘1원’에 입찰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간혹 1원 입찰 사례가 있지만, 그때는 1원 입찰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그런 시대에 1원을 적어낸다는 것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선례가 없다고 해서 주저하기보다는 뭐든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 내가 사고를 한번 쳐보자. 이번 입찰은 사고를 치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겁도 없이 상사와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입찰장에 들어가서 1원을 적어냈다. 그러자 담당자가 깜짝 놀라서 나를 불러세웠다.
“이거 잘못 쓴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맞게 적었습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우리 회사가 입찰에 성공했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회사에 들어왔는데 1원 입찰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발칵 뒤집힌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상사가 결재판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었다.
“너 미친 거 아냐? 어떻게 1원을 적을 수 있어? 너 회사 팔아먹을래?”
-54쪽
❙ 그러다 그 말이 결국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삼성전자에서 19년 동안 일하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아무리 장사를 잘하더라도 마케팅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내가 업계 1등으로 올라서겠다.’
필름 사업을 하는 동안 그 목표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나에게 ‘1’이란 엄청난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매직넘버였다. 나는 모든 에너지를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쏟아부었다. 1등이라는 목표는 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결국 4년 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1등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면 목표 달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60쪽
❙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생각해낸 가격이 바로 ‘149,900’원이었다. 지금이야 홈쇼핑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가격을 책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필름업계에서는 9,900원으로 가격을 정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1만 원, 5만 원…… 이렇게 딱 떨어지게 하는 게 보통이었다. 9,900원 식으로 가격을 생각해낸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격을 책정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확실히 남을 수 있고 또 동시에 싸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카피를 멋지게 하나 만들어서 잡지에 광고를 냈다.
“스모그 필름 149,900원에 엄청나게 싸게 팝니다.”
광고가 나간 후 사무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필름가격이 공개되자 총판들은 물론이고 거래처들도 모두 놀라는 것이다.
-79쪽
❙ ‘취업해서 돈을 벌면 나도 남들처럼 여자랑 데이트하자.’
이화여대 근처에 하숙집을 정했다. 서울 그 넓은 지역에서 하필이면 이화여대 근처에 갔을까? 아무래도 여대 앞이니 예쁜 여자를 만날 확률이 높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하숙집을 정했다. 그리고 어떤 여성을 만나면 좋을지 계속 상상했다.
‘내가 인상이 좀 나쁘니 여자친구는 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눈이 크고 피부가 하야면 순해 보이니 나랑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아내가 된 약대생을 만나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자는 게 목표였는데 뜻한 바를 이룬 것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능력 있는 아내를 만난 것도 내가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132쪽
❙ 그럼 상대의 마음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뮤지컬이나 연극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꼭 하는 게 있다. 바로 리허설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미흡한 부분이나 보오나할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리허설이 있기에 실전에서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상대를 만날 때도 이런 리허설이 필요하다. 리허설을 해보고 나가면 상대의 마음을 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책상 위에서 연습하고 나가세요.”
내가 삼성전자 시절부터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한 말이다. 이제 무슨 의미일까? 즉 상대를 만나기 전에 마음을 열 방법을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한 번은 부산에서 대리점 소장을 할 때였다. 당시 회사 차원에서 전국에 있는 출장소들을 불러서 대리점 개설 경쟁을 시켰다. 그런데 운 좋게도 내가 전국에서 1등을 한 것이다. 다른 소장들은 네다섯 번 찾아가서 이야기해도 설득이 안 됐다. 그런데 내가 가면 한 번에 ‘오케이’ 하는 것이다. 덕분에 포상금으로 5,0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그 비결이 뭐였을까? 말발이 화려해서? 아니다. 비결은 바로 책상 위에서 미리 연습하고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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